삼가 생각건대 시조(始祖) 공헌공(恭獻公)께서 본시(本是) 송(宋)나라 개봉부인(開封府人)으로 고려(高麗)에 동래(東來)하여 동국(東國)의 신씨(慎氏)를 창기(刱基)하였음은 사첩(史牒)에 이미 요연(了然)하지만 중원(中原)에 있어 우리 신씨(慎氏)는 어떻게 하여 유래(由來) 되었는지 그 자세한 기록을 오늘날에 찾아보기는 퍽 어렵다.  그러나 명대(明代)에 편찬된 상우록(尙友錄)은 고기(古記)를 상고하여 “신천수징음전국금골리자신자이자위성”(慎天水徵音戰國禽滑釐字慎字以子爲姓)이라 하였고 만성통보(萬姓統譜)는 “신씨계출간천수전국금골리자신자지후이자위씨”(慎氏系出干天水戰國禽滑釐字慎子之后以字爲氏)라 하였으나 신은 곧 천수(天水)의 땅에서 나왔으며 전국시대(戰國時代) 묵자(墨子)의 제자(弟子)로 학자(學者)이신 금활리(禽滑釐)가 그의 자(字)인 신(慎)으로서 씨(氏)를 하였다. 혹은 성(姓)을 하였다는 기록을 살필 수 있으므로 혹시 우리 신(慎)의 기원(起源)도 여기에 있지 않을가 생각하여 본다. 그러나 일설(一說)에는 초(楚)나라 평왕(平王)의 세자(世子) 건(建)이 모함을 받아 정(鄭)나라로 도망하여 거기에서 죽고 그 아들에 승(勝)이 있어 호(號)가 백공(白公)이었는데 오(吳)나라로 가니 오나라 사람들이 초(楚)나라의 위협을 두려워하여 백공(白公)을 죽이려 하거늘 백공(白公)의 장자(長子)는 신현(慎縣)으로 도망하여 신(慎)으로 성(姓)을 삼으니 이때부터 신(慎)이라는 성이 시작되었다 하나 사서(史書)에서 그 사실(事實)을 상고하였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