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신씨 역사자료 올리기

영계공(瀯溪公) , 휘 희남 (喜男)의 유묵을 읽으면서

페이지 정보

신용재 작성일25-08-22 07:20 조회6회 댓글0건

본문

  한호 석봉의 필체가 스승인 영계공과 아주 유사하다. 한호 석봉의 필체는 독창적이라 한다. 그것은 그 스승의 필체가 독창적인 싸앗을 뿌려주었기에 가능했다. 서예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래 스승과 제자의 필체를 통해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석봉 선생은 영계공(瀯溪公) 신 희남(慎 喜男)의 제자로 영암읍 농덕리에 있는 죽림정사에서 12세부터 25세까지 필법을 전수받은 기록이 있다. 영계 공께서는 당시 교분이 깊었던 스승인 조선의 유학자 서경덕 (화담)의 추천을 받아 한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영계공은 필자의 직계 18대 조부님으로 족보를 읽다보니 이런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瀯溪公 후손들은 영암에 송양서원(松陽書院 :송양사, 이우당)을 지어 그의 외증조부님이 세운 녹동서원과 더불어 호남 학문의 근간을 이루었으며, 증조부인 요수공(樂水公_을 기리기 위해 구주서당 자리에 후세에 설립된 구연서원 (龜淵書院)과 관수루(觀水樓)는 영남학문의 발원지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 명승 53호로 지정된 수승대의 요수정은 요수공 께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한호 석봉은 개성에서 태어났지만 영계공을 따라 영암으로 어머니와 함께 내려와 그곳에서 성장했고 스승인 영계공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유학을 하고 추후 과거 급제하여 벼슬길로 나아갔지만 영계공께서는 스승이면서 후견인으로 석봉을 도와주었다. 한호 석봉은 그런 측면에서 타고난 재능이 있어 청출어람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이런 내용의 글을 신씨 대종보  제 51호에 올렸지만 간추려서 다시 소개하는 이유는 유명한 조선의 명필 한호 석봉이 영계공의 제자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어떻게 한호 석봉이 글을 익혔는지 기록 조차도 거의 없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다. 

13년간 영암에서 살면서 그가 진사시에 합격할 때까지 영계 신희남의 문하에 들어가 필법을 전수받았다. 한석봉은 영암읍 농덕리(옛 들구실) 가장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죽림정사’라는 곳에서 공부를 했다. 

 

 

한호 석봉의 해서체 (2).jpg

 

                                                            한 석봉의 행서 필체

 

 

영계공 유묵(사진).jpg

한 석봉 스승 영계공, 신 희남 조부님의 행서 필체

 

영계공, 喜男의 유묵(遺墨)에 관심을 둔 것은 공께서 조선시대 3대 명필 중 한 사람인 한호(석봉)의 스승님이셨다.” 라는 내용을 보게 되면서였다. 영계공의 유묵이 행서로 된 2페이지의 한문으로 되어 있어 아는 글자보다 모르는 글자가 너무 많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요즘 배우고 있는 서예의 달인인 선생님께 여쭤봐 한문의 음과 훈을 알아봐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하여 행서를 해서체로 바꿔놓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영계공의 유묵을 일반 사람들이 알아보기 힘든 행서를 해서로 바꾸면 아래와 같다.

 

 

戒爾勿多言( 계이물다언- 네게 훈계하니, 말을 많이 하지마라.)

多言衆所忌( 다언중소기- 말 많음은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니)

笱不愼樞機( 구불신추기- 진실로 추기를 조심하지 않으면)

灾厄從此始( 재액종차시- 재난이나 액운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是非毁譽間( 시비훼예간- 옳고 그르니 헐뜯고 칭찬하는 사이에 )

適足爲身累( 적족위신루- 단지 몸은 화를 당하기에 충분하리로다.)

 

영게공 유묵 5.png영계공 유묵 5-1.png

 

 

 

위 영계공 유묵 시작부문을 해서체로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戒爾學立身 (계이학립신-네게 이르노니 자신을 세우는 법을 배우는 데는)

莫若先孝悌 (막약선효제-어느 것도 효도와 공경만한 것이 없다.)

怡怡奉親長 (이이봉친장-기뻐하는 마음으로 부모와 어른을 봉양하며)

不敢生驕易 (불감생교이-감히 교만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갖지 말라.)

戰戰復兢兢 (전전부긍긍- 두려워하고 또 조심하며 )

造次必於是 (조차필어시- 한시라도 잊지 말고 이를 마음속에 새겨 두어라.) 

 

위와 같이 해서로 된 것을 통하여 영계공의 글을 해석하니 비로소 이해가 되고 그 기쁨은 아주 값진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보다 더 컸다. 영계공께서 시공을 뛰어 넘어서 필자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삶의 추기(중요한 내용)를 직접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글의 행서로 된 전문은 정미문화사간 영계선생 유집 ( 신 희남 , 권 수용 )으로 출간된 서적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다. 위의 내용은 거의 마지막 구절이다

 

후기 : 한석봉의 스승인 영계공과 그의 재능을 치하한 조선의 선조 이야기를 소개한다.

 

 

한석봉 인생에서 신 같은 존재인 영계 신희남, 한석봉을 훌륭한 인물로 키운 영계 신희남

신망이 두터움지고 뛰어난 기질을 갖춘 아이구나

희망이 보여지나니 반드시 만인이 너를 선망하리

남문에 입성할진데 이어찌 한평생 기쁨 없을리오

영계 신희남은 제자였던 석봉 한호에게 '총망하고 재주가 많은 너는 필시 세상 사람들이 우라러 볼 것이요/임금의 명을 받아 총애 속에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명예를 얻을 것이다' 라는 제자인 한석봉에게 큰 기대를 가졌던 영계 신희남의 마음을 담은 글이다.

한석봉을 어여삐 여기고 남달리 총애했던 조선 14대 왕 선조, 나라에 인재로 쓴 임금 선조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그대는 나라의 보배로다

조선의 기운이 돌 정도로 그대는 나라의 빛이로다

조선의 명필 석봉 한호에 대한 선조 임금은 한석봉에 대해 '네가 과연 신이 아니고 무엇이라는 말이냐 너의 글씨를 보면 세상을 보는 것 같고 신비스럽구나/분명 알고 있거늘 너의 글씨와 성품은 이 나라의 값진 보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의심할 여지가 없도다/그대의 필력은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 힘찬 기운이 솟고 힘찬 기운은 나라와 세상을 밝게 하도다' 라는 선조 임금이 한석봉에 대해 예찬하는 글이다.

한석봉을 키운 신희남과 한석봉을 총애한 선조, 이 두 분들의 이름과 명칭으로 한석봉을 향한 마음을 풀어봤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